집터 근처를 산책하다 보면,
종종 마주치는 어미 사슴과 새끼 사슴 2마리
사슴을 만날 때마다 나의 머릿속에는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노천명 시인의 '사슴' 시 구절이 떠올랐다.
'안녕? 잘 지냈니?'
인사해본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새끼 사슴들은
나의 얼굴을 한번 '쓱' 쳐다보곤 겁에 질린 체
숲속 어디론가 도망가버린다.
하지만 반면에 어미 사슴은 가만히 미동도 하지 않은 체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킨다.
'새끼들과 함께 도망가지 않는 이유가 뭘까?'
아빠 사슴은 항상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사냥꾼에 의해 희생을 당했는지 모르겠다.
어미는 새끼사슴에게 신신당부한다.
'사람들을 만나면 꼭 너희 둘은 도망가'
어미가 너희를 꼭 지켜줄게.
부모의 마음이다.
'그렇게 새끼들을 대신해 사냥꾼의 손쉬운 표적이 되기 위한 어미 사슴의 마음일까?'
새끼들이 숲속 안으로 도망친 후,
한동안 나와 어미 사슴은 서로의 눈을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 어미 사슴은 내가 해칠 마음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자신 머리 위에 있던 블랙베리들을 긴 모가지를 이용해 따 먹기 시작했다.
나는 어미 사슴이 블랙베리 가시에 찔리지 않고 편하게 먹을 수 있게
주위 잘 익은 야생블랙베리를 하나둘 따서 던져주었다.
처음에 어미 사슴은 관심 없는 척하다가 가늘고 긴 다리로 슬금슬금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가 던져준 블랙베리들을 야금야금 먹는다.
그렇게 어미 사슴과 시간을 보낸 후,
사슴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발길을 돌리자
어미 사슴은 새끼들을 찾으러 숲속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나는 새끼 사슴들이 어미 사슴에게 빠르게 향하는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의 머릿속에 블랙베리를 먹고 있던 사슴이 떠올랐다.
더는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 아닌
'모가지가 길어서 블랙베리를 따 먹을 수 있는 짐승'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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